퇴임사 통해 “사법부 신뢰와 독립 훼손 우려” 밝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 확인된 문건 196건이 31일 추가로 공개됨으로서 사법부 농단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으며, 1일 대법관에서 퇴임하는 고영환 대법관의 발언과 정치권의 비난이 정가를 흔들고 있다.
1일 퇴임한 고영환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직을 맡아 ‘재판거래 및 판사사찰’ 의혹의 전면에 대두되었던 인물로 오늘 퇴임사를 통해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인해 법원 가족은 물론 사법부를 사랑하는 많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 안팎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고 사법권 독립이 훼손될 우려에 처해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며 “저로서는 말할 자격이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의혹에 연루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고 대법관은 2016년 2월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되었으며, 지난해 2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책임을 지고 처장직에서 물러나 다시 대법관으로 복귀했으며, 오늘 대법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퇴임하게 되었다.
고영환 대법관은 또한 “사법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는 법관들이 재판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늦었지만 사법 권위의 하락이 멈춰지고 사법에 대한 신뢰가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며 법관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과 정치적 거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 대법관은 “제가 관여한 모든 판결에 대해서는 지금은 물론 향후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판과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두 제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며 자신을 향한 책임론을 피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대법원은 사회의 급격한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국민의 기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는 명제 또한 오늘의 우리 사회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발언해 본인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 시 일어난 재판거래 의혹과는 다소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원내대변인은 “부끄러움조차 없었던 양승태 대법원의 민낯”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양승태 대법원이 벌인 핵폭탄급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31일 발표된 추가 공개 문건에 대해 상상 이상이라고 밝혔다.
또한 “판도라의 상자 속에는 법원행정처가 자신들의 숙원과제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의 재판거래는 물론 국회, 언론에 대해 전방위 로비를 자행한 사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며 “욕망에 들끓은 그들에게는 한 점의 부끄러움조차 없었던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사법정의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재판을 흥정거리쯤으로 여기고 국민을 이기적인 존재로 인식한 법관들은 법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며 “법원은 사사건건 영장기각으로 맞서고 있다”며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신용현 수석대변인은 “청와대에 재판거래까지 제안한 사법부,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법원이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논평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의 정치적 거래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
신 수석대변인은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작성된 사법농단 관련 해당 문건에서는 사법부의 숙원사업인 상고 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와대가 원하는 사건을 대법원에서 맡겠다고 약속하며 공직선거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예시로 드는 등 민감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며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포기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또한 “3권 분립 원칙에 의해 공정한 재판만을 생각해야 할 사법부가 청와대에 노골적으로 재판거래까지 제안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헌법파괴행위”라며 “상고 법원 도입을 결정할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성향까지 상세히 분석했으며, 언론을 활용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에 이르면, 사법부가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법원이 아니라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사법부를 질타했다.
민주평화당 이용주 원내대변인도 “국민을 외면하고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포기한 사법농단세력은 반드시 엄벌해야 한다”며 “문건의 내용에 따르면 상고법원 설치 입법을 위해 재판을 거래하고,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포기한 채 청와대의 사법권 침해의 길을 열어 놓았다”라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회손한 심각한 사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국민을 무시하고 권력 분립을 스스로 부정한 사법 쿠데타”라며 “그럼에도 사법부는 사법농단 사태 수사를 위한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영구청구를 기각하고, 관련 문서에 대한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등 여전히 진상 규명에 미온적이다. 사법부의 권한은 대한민국 국민이 부여한 것이다. 결코 사법부도 국민의 명령에 반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김현수 기자